한살림 대보름 행사 소감문(천안 김모과장의 압력으로 안양 김모과장이 씀...)
앙상한삶의혼 2006.02.20 21:06:15
새해 첫 달맞이, 정월대보름이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이맘때면 어릴적 이웃집 부뚜막 언저리에서 고봉가득 오곡밥과 나물을 모아 친구집에서 나눠먹고 들로 산으로 쥐불놀이를 즐기던 그 시절이 생각나곤 합니다. 세월이 지나 그시절의 저만한 아이들을 키우고 있으나 제가 가졌던 추억을 같이 나눌길 없어 안타까움을 느끼던 차에 한살림 행사을 알게되었고 즉시 신청하였습니다.
한살림 천안지부에서 초청해주신 생산자분들이 계신 아산까지는 그리 먼 곳이 아니었지만 온 가족이 같은 버스에 타고 여행을 가는 기회는 흔치않기에 설레임의 크기는 작지 않았습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시골의 모습은 제 기억속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 속에서 어릴적 추억의 한 자락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픈 아비의 욕심은 윷놀이에서 1등하겠다고 다짐하는 아이의 모습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주유소 옆 공터에 버스를 내리니 이미 여러 생산자분들께서 마중 나와 환영해주셨습니다. 멀리서 오시는 서울지부와 고양시지부 회원분들의 도착을 기다리며 그리 두껍지 않은 눈에 덮여있는 산과 들을 보며 상쾌한 공기를 깊이 마시며 유쾌한 기다림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회원님들께서 도착하신 후 농악대의 흥겨운 가락에 맞춰 갖가지 격문이 적힌 만장을 앞세우고, 지난해 우리를 힘들게 했던 모든 잡귀를 쫓아내고 올 한해 만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하며, 비록 길가의 지신이었지만 힘차게 밟으면서 준비된 행사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작년 수해로 인하여 버려진 배추가 가득한 밭에 가져온 만장을 꽂고, 농악대의 흥겨운 환영공연을 보면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우선 행사장 주변에서 두껍게 썰어 숯불로 노릇하게 구운 삼겹 돼지고기를 입안에 가득 채우고, 탁배기 한사발 들이켜 온 몸에 흐르는 뜨거운 기운을 느끼며 비로소 따뜻한 생산자분들의 환영인사를 느꼈습니다.
오곡밥과 맛있는 나물을 준비해온 접시에 가득담아 대형비닐하우스안에 준비된 현대식 멍석위에 펼쳐놓고 제대로 된 점심을 먹었습니다. 평소 나물을 입에 대지 않던 아이들인지라 걱정이 컸지만 생각보다는 잘 먹어주어 더욱 감사한 만찬이었습니다. 따뜻한 기운이 비닐하우스안에 가득하고 맛있는 기운이 입안과 뱃속에 가득하니 청정 농산물이 빚어낸 탁주의 구수함이 더욱 좋았고, 뒤 이어지는 누워 배두드리기라는 신선 놀음이 즐거웠습니다.
아이들을 위하여 준비된 연을 하나씩 받아들고 들판 여기저기에서 연날리기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모여서 연날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요즘 시골에서도 흔치 않은 모습이라 수백의 연이 하늘위로 날고 있는 행사장 옆을 지나는 분들도 신기한 듯 쳐다 보셨습니다. 이어지는 윷놀이에서 기대했던 우승은 못했지만 나름대로 정통의 멍석 윷놀이에 재미있었습니다. 제기차기는 우리가족의 참가가 없었지만 동심으로 돌아간 어른들과 온 가족이 한몸으로 쳐올리던 경쾌한 제기판의 소리에 눈과 귀도 즐거웠습니다. 떡메로 두드려 만든 인절미를 구수한 냄새 가득한 콩고물로 버무려 입안가득 넣고 김치국물 마시며 목 메임을 달래었습니다. 쌀 한부대를 짊어지고 나누던 힘자랑이 끝나고 먹은 떡국 저녁식사는 온 몸을 온기로 꽉꽉 채워주는 난로였습니다. 그릇그릇 국물까지 비우며 곧 이어질 쥐불놀이 야외 행사를 위해 깡통에 구멍을 내고 철사를 이어 준비를 했습니다.
어둑해진 바깥에는 이미 쥐불을 만들기 위한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어른과 아이들 손에 들린 깡통안으로 빨간 불씨를 뭉텅이로 집어 넣고 빙글빙글 큰 원을 그렸습니다. 불씨는 더욱 커지며 너른 들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예전 어릴적 이웃마을과 벌이던 놀이는 없었지만, 멀찌감치 이어진 둔덕에서 돌리던 깡통을 던지는 모습은 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 아빠의 살을 뺐으면 하는 아들의 소원, 온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엄마의 소원, 올해도 풍년이 계속되기를 기원하는 아빠의 소원 등 함께한 모든 이의 염원을 한데 모은 달집을 태우며 모든 행사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서로에게 감사를 주고받으며 머리에는 추억을 주워 담을 수 있었던 한살림만의 멋진 만남, 행복한 어울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