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한삶의혼                  2008.03.20 12:57:55

 

경찰·기자도 당한 전화사기..대책없다?
갈수록 교묘해진 '보이스 피싱' 피해 '눈덩이'...당국도 속수무책
 
성연광 기자 | 03/19 11:19 | 조회 3794    
 
 
 
"○○은행입니다. 선생님의 계좌에서 5000만원이 인출됐으니, 확인하시려면 '9번'을 눌러주세요."

집전화도 개인 휴대전화도 아닌, 기자실 전화번호로 걸려온 황당한 전화 한 통. 갑자기 '취재끼'가 발동했다. '9번'을 눌렀다. 그러자, 어눌한 말씨의 한 남자가 ○○은행 콜센터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이름과 주민번호를 묻는 게 아닌가. 서둘러 가짜 이름과 주민번호를 댔더니, 대뜸 "지금 장난하십니까?"한다. 그 사이 인터넷 실명 서비스까지 대조한 모양이다.

되레 "왜 사기를 치느냐"고 따지는 말투가 조선족을 연상케 했다. 그러면서 그 남자는 "(잘)아시는 분이..앞으로 이런 전화오면 절대 받지마라"면서 호통치고 끊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얼마전 기자가 직접 겪은 이야기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 전화는 다름아닌 '전화낚시질(보이스 피싱)'. 전화로 개인 신상정보는 물론 금융정보를 빼내 송금을 노리는 '전화사기'는 최근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수법도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다. 유선전화, 휴대전화 가릴 것없이 마구 걸려오는 전화는 귀찮은 정도를 넘어 거의 공해 수준에 이르고 있다.

물론 이런 전화를 거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그러나 무작위로 걸려오는 전화를 불법신고할 방법도 없다. 발신번호(CID)로 추적해도 허사다. 발신번호를 조작해서 전화를 걸기 때문에 전화기로 찍힌 번호가 소용이 없다. 전화사기업자들은 바로 이런 점을 악용해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남의 정보로 돈을 가로채고 있는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06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보이스 피싱범죄는 총 5702건. 피해 규모만 벌써 569억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보이스 피싱' 피해사례가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그 피해가 다소 줄어드는 듯하더니, 지난해 연말부터 또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실제 올들어 1~2월에 집계된 피해사례만 총 399건이다. 미집계된 사례까지 포함하면 실제 피해건수는 이보다 몇배 더 많을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갈수록 대담해지는 '보이스 피싱'

지난해까지만 해도 '보이스 피싱' 수법은 경찰, 검찰, 대법원, 금감원, 국민연금관리공단 등 주로 국가기관 직원을 사칭했다. 그러나 최근들어 수법이 더욱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은행, 증권은 물론 통신회사나 우체국 직원까지 사칭하고 있다. 국가기관 사칭 수법이 널리 알려지면서 누구나 이용하는 서비스로 일반 가정집을 접근하고 있다. "전화요금이 연체됐습니다" "소포가 반송됐습니다"하는 방식으로 개인정보를 빼내거나 송금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국내 정치 사회적 이슈를 반영한 신종 수법도 활개를 치고 있다. 가령, 입시철에는 대학에 합격했다고 사기를 치기도 하고, 대통령 취임식때는 참석자로 선정됐다는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삼성특검에 적발된 부당징수 보험금을 환급해주겠다며 접근한 사례도 적발됐다.

불특정 다수에게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사기를 치는 일반적인 보이스피싱과는 달리, 미리 입수한 개인정보를 이용해 타깃을 정해놓고 달려드는 지능적인 수법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미국, 캐나다 등에 유학을 보낸 자녀를 둔 부모를 상대로 '자녀를 납치했다'고 협박한 뒤 몸값을 요구하는 사례가 대표적. 해외의 경우 시차 때문에 즉각적인 확인이 어렵다는 점을 악용했다. 특히 범인들은 자녀의 비명소리라며 '살려달라'는 거짓 목소리까지 들려주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실제 지난해 이와 유사한 사기전화로 지방의 한 법원장마저 피해를 입었다. 한 지방 경찰서장도 이런 사기전화를 받고 번호를 추적했을 정도다.

자녀의 휴대폰에 지속적으로 욕설전화를 퍼부어 일부러 전원을 끄게 만든 뒤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납치했다"고 속이는 정교한 수법까지 감지되고 있다. 심리적으로 한순간 방심하는 찰나를 노리고 있는 것. 사실 이같은 사회공학적 기법에 안속을 장사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땜질식 처방만 '급급'..종합 방지대책 '전무'

현재까지 밝혀진 보이스피싱 범죄 가담자는 한국인도 있지만 주로 대만이나 중국인들로 알려졌다. 이들은 대만과 중국 등지에 자체 콜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들이 악용하는 금융계좌 역시 대포통장이 대부분이다. 수사기관에서 범인 추적과 검거에 적잖은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의 대책이라는 게 고작 '대국민 예방홍보'와 금융계좌의 이체한도나 외국인 명의의 계좌개설 자격요건을 일부 강화하는 '임기응변'식 대응에 머물고 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가 위기관리 차원에서 법제도는 물론 기술적, 사회심리적 측면을 아우르는 종합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보이스 피싱 범죄가 갈수록 대담하고 일반화되면서 그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그러나 당국은 이를 전담하는 팀조차 꾸리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인 것이다.

무엇보다 기존 법제도를 보강하는 것만으로도 이같은 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포통장만해도 그렇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엄연히 금융실명제에 따라 대포통장 개설이 불법인데도 보이스피싱에 악용되고 있는 것은 금융실명제 위반 처벌 자체가 가벼운데다, 은행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처벌기준을 더욱 강화하고 무분별한 통장개설이 범죄행위를 방조하는 행위인만큼 시중 은행에 일정 책임을 묻는 형태로 전자거래금융법을 손질해야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사기전화가 걸려올 경우, 이용자들이 적극적으로 신고해 제2, 제3의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신고시스템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통신사업자와 수사기관의 핫라인 개설을 통해 신고접수된 해외전화를 즉각 추적하거나 회선을 막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면서 "특히 신고자에게 일부 포상금을 지급하는 등 자발적인 신고유도 방안도 고려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정보 묻는 전화는 무조건 '의심'

이렇다할 대책이 없는 현재로선 보이스 피싱 범죄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이용자 몫이다. 때문에 피해를 막으려면 무엇보다 이용자들 스스로가 철저히 주의할 수밖에 없다.

경찰청 관계자는 "일반 가정집에 먼저 전화를 걸어 개인정보를 묻거나, 더구나 현금인출기(ATM)로 유도하는 경우라면 100% 사기 전화 유형이라고 보면 된다"며 "특히 최근 '자녀납치' 등을 이유로 전화가 걸려올 경우, 당황하지 말고 해당자녀의 안부를 먼저 확인해야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특히,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개인정보와 블로그나 미니홈피 등 신상정보를 악용하기 때문에 '전화번호'나 '집주소' 등 단서가 될만한 정보들은 함부로 올리지 말라는 것이 보안 전문가들의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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